와호장룡

- 바람으로 남은 그리움 -

EBS 토요일 주말의 명화를 본다. 이번 주는 '와호장룡'(臥虎藏龍,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줄거리: 수련 중 무언가를 깨달은 무당파 고수 이모백은 속세로 내려와 절친하고 애틋한 사이인 수련에게 자신의 청명검을 베이징의 철총관에게 맡겨 달라 전한 뒤  

강호를  떠나려 한다. 그런데 수련이 철총관의 집에 간 그날 밤, 청명검 도난 사건이 벌어진다. 옥대인의 집 근처에서 범인을 놓친 수련은 낮에 만났던 옥대인의 딸 소룡을

의심한다.... 

1920년대 왕주류의 무림소설을 이안감독이 영화화, 그는 본 영화로 홍콩 중국내에서만 한정되었던 무술영화를 세계적 영화로 확대, 그는 대만에서 자라 미국 중국 국적을  

모두 가진, 그러나 어느 나라에도 수용되지 못한 소외자 였다고 스스로 밝힌 감독, 시사주간 2000년 최고의 영화, 아커데미상 4개 부문 수상. 주윤발(이모백) 수련(양자경)  

장쯔이(소롱) 장진(소호), 협객들의 의리와 우정 복수와 권성징악을 다룬 영화, 득도직전에 이를 정도로 무공이 뛰어난 이모백 그러나 스승에 대한 복수심과 수련에 대한  

연모의 정을 놓지못해 "모든 것을 놔버림으로서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도가의 가르침을 실현 못한 얘기의 영화>  

이상이 이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이다.

명화가 명화인 이유가 뭘까?

그것은 분명히 대다수가 동의하는 메시지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 안에는 지혜와 혜안과 통찰과 그리고 다양한 공감능력을 이끌어내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런 명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고 진실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가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를 되씹어 보게 하기 때문이리라.  

명화라는 것이 강요된 집단의식이나 혹은 집단적 의식화의 결과로 이름 붙여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국경과 인종과 이해를 떠나 관객들이  

명화라고 이름 붙여주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 속에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사회구조와 인간관계의 내면 심리와...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공감과 감동이 있기 때문이리라. 

주윤발의 마지막 멘트에 본 영화의 대주제가 녹은 듯하다. 연인의 품에 안겨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그가 남긴 말. "나는 온통 삶을 허비했다, 마지막 숨으로

고백 하건대 당신을 평행도록 사모했다" 차마 하지 못한 그 말을 남기고 어쩌면 죽음만은 행복하게 님의 품에서 마무리 한다.  

 최고 절대 고수로서 무림의 절대강자가 되었지만 그녀 곁에만 서성대고 먼 거리에서 서로 연모의 정을 가지고 바라만 보았던 그녀와의 관계가, 한 번도

사랑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한 그의 삶이, 결국 그의 삶은 그 어떤 다른 의미들도 의미 없게 만들어 버렸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듯하다. 무술을  

연마하는 것이 무력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 완성을 통해 득도와 해탈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음이라 해도 그것이 결코 현실적 삶에서의  

사랑보다 의미 없었음을... 영화는 전하고 있었다. 

명화가 명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를 필요로 하겠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며 약 두어 시간에 보여주는 집중적 시청각 컨텐츠다. 영화는 큰 주제와 다양한  

영화적 기능들 그리고 시각적 청각적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고 극대화하여 제한된 시간에 제작자의 전하고자 하는, 던지고자하는 질문과 암시들을 쏟아  

담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우 강력한 매스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영화는 시각적 효과와 청각적 요소가 어우러진다. 음악, 대사, 배우들의 눈동자의 움직임, 이렇게 다양한 효과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강력한 전달력을  

가지고 영화는 관객들에게 다가선다. 무대를 통한 연극과 달리 보여주고 싶은 것만 집중적으로 클로즈 업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영화는 무술 영화가 갖는 환상적인 장면들과 더불어, '사는게 뭘까'로 표현되는 무의미한 삶에 대한 탈피의 환상, 그리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 ...  

나아가서는 사회적 제약이나 관념, 혹은 제도라는 틀에 얽매여 그냥 '살아내는 이'들이 갖는, 그리고 깨트리고 싶은 열망에 대한 묘사... 이 모든 것들이  

선과 신의 세계가 아닌 인간세상에서의 부대낌과 부딪힘으로 나타나 결국 우리의 현실적 삶과 희망을 강력히 전하기에 그것에 감동하게 하는 영화다. 

이모백이 득도를 해서 속세를 떠나버렸다면 영화는 명화 되지 않았으리라. 친구의 연인이었던 ‘수련’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이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기에

관객의 아린 공감을 끄집어 내고있다. 그리고 소룡의 보편적 이기적 욕망을 바탕색으로 깔아 이로서부터 연유되는 온갖 사건들을 버무려 간다.  

인간은 욕망을 놓지 못하리가. 작든 크든 그 욕망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겠다. 때문에 "모든 것을 놓아야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절대적 가르침은  

이룰 수 없는 피안이기에, 자기위로(self-consolation)의 역할로만 언제나 기능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모호함 속에서도 분명 동물과  

인간의 구분처럼 전제의 높고 낮음의 차이가 인간이 영화를 만들고 보는 이유가 되는 것 아닐까?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 그 바람 속에 서 있기에 하루가 더 가득해지는 것처럼, 별이 가질 수 없어 아름다운 것처럼, 늘 이방인들이 추구하는 현실  

도피적 환상은 누구나의 가슴 한 켠에 남은 그리운 공간이 된다. 그리고 이루지 못한 사랑은 또 하나의 삶의 여백이 된다. 

이모백의 이루지 못한 마지막 사랑 고백에, 바람으로 머물다 떠나는 그에게 떨어지는 연인 수연의 눈물방울, 그건 결국 바람을 향한 그리움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