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 조국 야망 그리고 사랑 -

주말드라마 '미스터~'우선 재미있다. 대단한 영상미, 300억 이상을 투자한 드라마? 등장인물들의 다양성, 애절하다가 단호하다가 결연하다가 애잔해지는 눈빛 연기들. 노을에 지는 파도 같은 배경음악,

무너져내리는 국운 앞에 온 몸으로 맞서는 여린 조선의 여인.

그리고 그 여인을 둘러싼 특별히 색다른 사내들의 각양각색 기구한 삶과 구애의 연가... 그들 모두가 끝내 이루지 못할 꿈만 꾸거나, 바라만보거나, 걷어내야만 하는 사랑 놀이? 미스터는 이런 드라마적 요소는 많이 갖추었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적 요소만 강조되는 듯하여 상대적으로 그 당시의 처절한 리얼리즘이 다소 희화화되는 듯한 우려는 어쩔 수 없다.

돈을 위해 조국도 신념도 지워버린 칼잡이 구동매, 이도 저도 아닌 룸팬이면서도 한 여인을 위해, 때로는 조국을 위해 진정성있는 몸짓을 보여주는 희성. 극의 중심에 서있으면서 자신을 버린 조국과 그 조국을 버리지 못하는 사내 유진 초이까지..

귀에 들어 오는 대사 하나 있다. "조선의 힘은 의병이었고 독립군이었다"고. 금모으기로 외환위기를 2년반이나 먼저 졸업한 민족, 우리민족에 대한 극중대사다.

이 드라마에 대한 자의적 평가하라면 '얇게 보인다 그러나 재밌다'. 고사홍 애신의 조부(이 댁이 함양 개평의 일두 정여창고택이라 더 재밌다) 그는 오후의 늙은 햇살같은 몸으로 가문과 조국을 지켜내고자 하였으나 몰러온 먹구름같은 일제 기세에 담장이 무너지듯 허물어져간다. 그는 당시 조선의 상황을 상징하리라. 조선의 기개와 혼, 충효절의가 그렇게 꺽여진 것. 물론 드라마는 개인을 미화하듯 한다. 해야한다. 황희정승도 사위를 위해 증거를 조작했고 최고의 군주 당태종도 형제를 살해하고 왕이 된 것은 역사다. 해서 역사속의 인물이야 쉽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리라.

부국강병! 역사는 강자가 살아 남는다는 것을 골백번도 더 보여준다. 총을 먼저 쏜 사람이 살아 남는다. 패한 자는 말이 없다. 입이 없다. 그게 역사다.

드라마나 영화 중 역사물을 보는 시각은 좀 특징이 있겠다. 그러나 어떻든 이런 컨텐츠에서도 재미가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은 강의든 글이든 마찬가지리라. 읽히지 않는 것, 외면당하는 제작물들이라면 무슨 소용 있으랴. 그러나 요즘 역사물들이 흥미본위로만 치우치거나 얄팍한 애국심에만 기대거나, 포장지 뿐인 의리나 정의감에만 빗대어 상업성을 숨기고 만들어지는 경향이 다소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본 드라마도 비현실적 요소에 기대며 애국이라는 대주제를 애로스적 관념주의로만 접근하는 경향도 있긴하지만... 드라마와 소설은 현실이 아니겠다.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위트가 넘친다. 주고 받는 말들이 가끔 실소를 자아내게 할 만큼 신선하고 감각적이다. 작가의 특징과 능력이다.

조선말 열강들의 군화와 총칼 앞에 무너져가는 조선, 그 중에서 전장의 꽃처럼 피어나는 애로시즘의 달콤함, 세남자의 신분의 차별, 백정 혹은 종놈 혹은 제일의 갑부지만 그 탐욕적 삶을 관조하는 듯한 그 댁 자손의 삶을 통해 극적 상황을 높여간다. 나라를 팔아서라도 자신의 이권을 챙기려는 매국자. 그러면서도 "이런 내가 얼마나 힘드는 줄 아느냐"는 참 기괴한 맨트로 인간 본성을 꼬집기도 한다. "처가댁하나 배신 하는 것도 그리 힘든데 나라를 파는 나는 오죽 힘들겠냐"는 외부대신 이완익의 말은 인간 본성을 건드린다.

자신을 위해 한 일에 스스로 피해자로 인식되고 싶은 이런 심리. 이런 자아도취의 괴변들을 우린 늘 본다. 일전에 법관들이 그랬다. 우리가 이렇게 고심하고 힘들어 하는 것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 때문에 자신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일본 넘들에게는 땅 한평도 팔지말라". 그러나 땅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피 점령자는 만주 북해도 홋가이도 시베리아로 수십만이 내 몰렸다. 그게 역사다. 국제관계 사회관계의 이런 진실들이 등장인물들 간 로망과 애국심으로만 전개되는듯 하지만 애신 생가의 처절한 파괴로 상징화되고 있어 좋다. 사랑도 부귀영화도 조국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 사회현실에 대한 처절한 이해관계, 힘의 메카니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고투, 조국을 파는 자의 대단한 정당성의 논리. 현재도 진행 중인 이런 요소들이 다소 아쉬워 보이긴 해도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