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에서

- 말없는 역사 앞에 서서 -

한국전쟁(남북전쟁,625) 68주년을 맞이하여 멀리 이북 땅이 보이는 철원 백마고지를 갔다.

그리 높지도 않는 봉우리하나 차지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뒤바뀌는 고지 탈환을 위한 전투로 1만 7천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곳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인간, 아니 젊은 군인 청년들의 무지막지한 무덤이었다. 조국을 위해 꽃처럼 스러져간 젊음, 순국선열, 호국영령... 담임목사가 기도를 하면서 울먹인다.

고지를 점령한 탓에 철원 평야가 남한의 소유가 되었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 여기에는 적나라하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린 늘 이지점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왜 싸워야 했는가? 왜 분단되어야 했는가?

지정학적 전쟁사(다카하시 요이치)를 읽어본다. 수천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낸 전쟁은 모두 땅을 뺏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유민주주의가 일반화 되면서 전쟁의 가능성은 사실상 많이 줄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전쟁은 군인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는 욕망놀이이다.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목숨 건 게임이다.

전쟁을 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쉬운 얘기는 아닐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국내의 정치적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한 전쟁도 있었고, 종교와 신념을 지켜내기 위한 전쟁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땅을 뺏기 위한 전쟁, 상대를 파괴시켜 자존감을 더욱 상승시키려는 욕망의 결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사랑의 반대편에 선 것이 역사가 기록한 전쟁이었고 힘의 논리였으며 그 속에서 염원으로 피어난 것이 자비와 사랑을 외치는 종교였다.

그러나 그 종교는 또 얼마나 전쟁에 정치에 이용되어 왔던가? 종교는 현실을 포기하게 하고 순응하게 하고 인간을 길들여서 순응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정치와 결탁하거나 우호적이었다. 정치와 종교가 서로 윈윈하는 관계를 유지해온 것이 개괄적인 역사다. 서로 다투는 상황도 있었지만 그것도 오로지 헤게모니(Hegemony)싸움이었다. 종교도 정치도 모두 백성과 국민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역사는 유사 이래로 강한 자가 지배했다. 물론 물리적 지배는 했어도 문화와 정신은 지배당한곳도 있다. 스파르타는 그리스를, 분서갱유(焚書坑儒)한 진시황이 한족을... 그렇게 무력으로 통일한 국가는 곧 망했다.

전쟁의 역사에서 보면 인간은 대단히 불합리한 존재이다.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행위가 훈장을 받는 뒤집어진 관념의 세계가 전쟁이다. 평화와 전쟁은 하나의 사건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게한다.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것이 전쟁이다. 전시에 왜 싸워야 하는지의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전장에서는 오로지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이다. 물론 대단(?)하지도 않은 것에 목숨을 거는 사건도 있었다.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은 연인을 차지하기 위해 연적과의 결투에서 사망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대단한 연구나 서적들의 논조를 빌릴 필요도 없이 지배권력의 확산, 타민족을 노예로 삼거나 식민지 국가로 만들기 위한 욕망의 발로겠다. 인디안들은 청교도란 이름의 정복자에게 조상들이 살아온 터전을 잃었다. 잉카제국은 성경을 내세우는 에스파니아에 몰살당했다. 인간은 불합리하다. 사랑의 이름으로 전쟁을 한다.

대왕 벌 한마리가 일반 벌통에 납시면 그 벌통의 벌들을 전멸한다. 힘의 논리이다. 처참하게 변한 벌들의 전장이나 인간 전장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수백을 살상하면 영웅이 된다’는 것이 스탈린의 전쟁에 관한 용어정의이다.

서두가 길다. 우린 한민족은 서로 왜 싸워야 했는가? 그리고 왜 이승만은 끝내 휴전을 원하지 않았는가? 북진통일이 이유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 당시 우리의 국방력으로는 턱도 없는 얘기였고 중공군이 개입한 이후 끝도 없는 양측의 희생은 불을 보듯 뻔한데... 때문에 이승만, 아니 남한이 빠진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미국은 이승만이 일방적으로 무모한 전쟁을 다시 시작할까바 그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 소위 에버레이디(EverReady 상비)작전까지 세웠다는데, 그때 휴전당사자가 되지 않은 탓에 아직도 평화협정, 종전선언은 미국이 주체이다. 북한은 중국이 당사자 국이 아니다. 우리는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상태다. 다만 잠시 휴전하고 있을 뿐, 아직도 종전선언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다. 

순국선열들에 대한 묵념,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바친 ~” 이란 말이 국어 상으로는 쉽게 수긍되지 않는다. 조국은 조상들로 부터 물려받은 나라다. 북쪽은 조국이 아닐까? 다만 자유민주주와 노예상태의 구속으로 부터 혹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위해서라면 다소 수긍된다.

일제의 지배, 해방과 동시에 38선, 3년 동안의 전쟁, 숱한 희생, 그리고 휴전, 처절했던 우리의 역사다.

왜 그랬는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가? 누구의 잘못이고 어디부터 틀려먹은 것인가? 북한 민족도 우리 민족이다, 한민족이다. 휴전선으로 나뉘었고 이념으로 체제로 나뉘었을 뿐, 한국전쟁에서 최소 300만이 희생되었다. 한 명이 무고한 이유로 살해를 당하여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다. 한국전쟁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지었을까?

전쟁을 피하여 조국을 버리고 외국으로 도피하는 것은 극단적 이기주의일까? 아니 전쟁이 발발하면 자유민주주의와 조국을 위해 돌아와야 할까? 국적은 외국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국내에서 재벌행세를 하는 분들은(?) 여차하면 도주하려고 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사회지도층의 병력의무가 소홀하다는데 사실일까? 625 당시 미국 장군들의 자녀들도, 8군 사령관의 자녀도 기꺼이 한국에서 자유를 위해 산화하였는데, 연평도 포격사건 때 지하벙커에서 비상대책회의 하던 참모들 중 현역만기 전역 자는 국방장관 한 사람뿐이었다는데, 북한군은 10년, 우리는 2년(과거에는 3년)을, 그 가장 아름답고 좋은 젊은 시절을 군에서 보낸다.

이념논쟁이 우리나라를 남북한으로 구분하였는가? 그것은 2차대전이 종료되고 난 다음 남한은 미국이 북한은 소련이 신탁해서 보살펴(?) 주기로 한 얄타회담의 결과 때문이었다. 왜 우리는 미국이 돌려주려고 하는 전시작전통제권을 지금도 받지 않으려 하는가? 아니 왜 돌려받지 못하는가? 국방력이 부족해서? 아직도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는 약소국가인가?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국가라면 독립국가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영토고권(territorial supremacy, 領土高權)을 가지지 못한 국가, 그렇다고 젊은이들을 10년씩 국방에 붙들어 둔다는 것은 참으로 비통한 일이다.

백마고지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21세기에 북한과 같은 완벽한 독재정권은 없다. 고려 무신정권은 4대에 걸쳐 100년을 지속했다. 그것을 오래전의 역사이다. 고려시대의 불교, 조선시대의 유교는 그 당시 정권이 500년간 지속되도록 뒷받침 해준 이념 혹은 사상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불교는 현실의 고통을 참아내어 내세를 기원하게하고, 이런 이념을 주도하는 승려는 국가에서 보호하고, 조선은 상하관계를 천부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인 유교를 국교화하여 임금님을 나라님으로 보게하고, 국토도 나라님의 것, 백성도 나라님의 것 막비왕토(莫非王土) 막비왕신(莫非王臣)이다. 물론 나라님이 깨어 있고 나라님이 백성을 근본으로 보는 세종대왕 같은 이는 백성의 삶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끌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사상은 개국이념이다. 그리고 인내천(人乃天)은 조선의 사상이다. 사람이 곧 하늘인 것만큼 인권을 높인 사상이 어디 있으랴, 서양은 기껏해야 천부인권설(天賦人權說)이다. 서양에서는 하늘이 위인데 우리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 널리 사랑하라는 홍익인간은 상대가 나와 생각이 달라도, 흠이 있어도, 적극적인 사랑은 아니더라도 개인의 권리까지 침탈하는 폭력은 아니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백성을 늘 그러고 싶은데.

더 이상의 희생이 없기위해 우리는 화합해야 한다. 통일되어야 한다. 대화하고 소통하고 양보하고 협력하고... 그리고 힘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