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결혼식>

ㅡ재혼 그 어떤 의미들에 대하여ㅡ

두 중년(中年)의 여인이 재혼(再婚)을 한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두 중년의 여인들이 재혼을 한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사귀는 수준이 아니라 혼인식을 하고 집을 구하고 살림을 차린다. 젊은이들의 혼인처럼 그렇게 다시 공식적으로 새 출발한다. 두분 모두 아들만 둘 키워냈고 큰 아들은 장가를 보냈다.

한 분의 얘기를 먼저 들어보자. 이 분 큰아들을 장가 보낼즈음 자신의 고독의 긴 그림자가 자기 앞길에 먼저 나서기 시작해서 앞으로 살아낼 일이 까마득하더란다. 해서 적극적으로  배우자를 찾기 시작했다. 친구, 지인, 누구나 붙들고 남자친구를 소개해 달라고 했고... 그리고는 세 사람을 만나 봤다. 

첫번째는 사업하는 능력있는 도시 남자, 성격이 호탕하고 각종 운동을  즐겨하고 지인들이 아주 많은 남자, 그를 몇 번 만나고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SNS를 하고, 그렇게 몇달 사귀다가 남자 쪽에서 먼저 연락을 끊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차인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고향 선배소개로 만난 남자, 이전에 만난 남자가 차도남이라면 이번에는 순진남?이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고 사귐이 깊어가도 진도?라는 것이 더 이상 나가지 않더란다. 그러니까 좀 거시기 해서 그만 두었다. 

그리고 세번째, 이번에 선배의 소개로 고향근처의 한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드디어 사랑에 빠지기시작했다. 자식들에게 소개를 하여 애들로부터 먼저 환영을 받았고, 주변에 소개하고, 현재는 두어시간 남진한 거리를 주말데이트를 즐기고,  지난해 가을쯤 그 분 이쪽 교회를 방문했었다. 인상이좋아보였다. 말쑥한 양복차림에 호남형의 중년 아저씨였다. 사람은 그 살아온 세월이 얼굴에 나타난다는 말이 전혀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이분 리본처럼 보였다.

‘리본(Re-born)’은 초혼 실패를 기점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뜻으로 초혼 때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더 안정적이고, 여성에 대한 매너까지 겸비한 매력적인 재혼 희망 남성을 지칭한단다. 상대 여성에게 주는 '리본을 묶은 선물'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 분 아직도 현역에 재산도 넉넉한 편인가보나. 그건 상대에게 재산이 얼마냐고 대놓고 물을 수 없으니 어림 짐작으로 대충들 계산하나보다. 

장성한 두 아들은 엄마의 결혼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의와 지원을 하는데 이유는 이제 그들도 자신들의 짝을 찾아 삶을 시작하는데 엄마가 혼자 지내야 하는 것이 부담되었다고 한다.

엄마의 결혼식! 그건 자녀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설까?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듯 하다. 상대 쪽 남자 분의 딸은 이미 결혼을 했음에도 아빠의 혼인에 그리 적극적인 편이 아니라니깐 말이다.

자녀들을 키워낸다는 것. 여자분 혼자서 아이 둘을 가난한 살림에 키워낸다는 것. 그건 참으로 긴 소명이자 숭고한 과업?일테다.  얼마나 많은 숨은 한숨과 눈물이 있었으랴. 처음 그 거대한 절망 앞에 섰을 때 어찌 그 큰 무게를 감당해 낼 수 있었을까!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것이 부담만은 아니었단다. 그들이 있었기에 그 긴 세월을 버텨올 수 있었단다.

또 한 분은 같은 동종업계의 분을 만났다.  예순을 바라보는 두여인의 재혼, 올 해 두커플 모두 결혼식까지 할 것이란다

왜 재혼을 할까? 그건 아마도 ‘행복을 찾아서’ 보다는 ‘외로움을 피해서’가 아닐까?  고독은 개인의 존재의미을 파괴한다. 영국에는 ‘외로움 장관’이 있단다. 어린왕자가 사막에서 뒤로 걸은 이유가 자신의 발자국이라도 보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라 하지 않던가. 혼자 사는 어느 처자는 원룸에 퇴근해서 티비부터 먼저 켠다. white noise (흰색소음)이라도 있어야 한다. 의미없는 소란이라도 필요한게다. 왕궁에 홀로 평생을 살아야 하다면 그 왕자는 아미도 자살을 선택할 것이라고, 독신들이 가장 힘든 시간이 명절이라고,  혼자 사는 어느 중년 여자 분은 단톡방에 보면 거의 반은해외여행중이다. 그게 즐거울까? 은퇴하고 부인은 하늘로 가고 자녀는 독립한 독일기자는 이제 사는 일을 그만두려 했다가 걷기 시작했다. 세계를 몇바퀴 돌 정도로 걸으면서 다시 사는 것의 의미를 찾았다.

모두 '고독을 탈피하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독과 싸워 끝내 이기고 그래서 고독으로 부터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자, 커플, 이성간의 만남.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까지도 자우, 암수, 수술과 암술. 그들이 만나야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도록 시스템화 된 것이 우주의 비밀이다.  동물의 구애행동은 인간보다 처절하다.  식물까지도 음양이 있다는 데  홀로 사는 것은 분명 순리가 아니다. 특별한 분들, 신조와 신념과 진리발견을 위해, 삶보다 더 중요한 그 어떤 가치에 자신을 투영해버리는, 지난한 고통같은 선택을 한 분들은 제외하고는...때문에 엄마의 재혼은 서러운 일도, 비난받을 일도, 그리고 더더욱 철없는 짓도 아니다. 엄마의 연애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리라. 그것은 엄마의 선택이 아니라 우주의 선택 생물종의 선택, 무릇 살아있는 것들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전통적 재혼관은 고려시대까지는 제한이 없었고, 조선 세종 때부터 재혼은 남자에게는 허용하고, 과부가 재혼한 경우에는 자녀의 과거급제를 불허하였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경장 때 칙령으로 허용하였다. 사실 재혼의 문제는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 달리 보아야 할 듯하다. 자녀가 어렸을 때의 재혼과 성장하고 난 다음의 재혼, 그리고 이혼재혼과 사별재혼, 분명 동일선상에서 다면적 함의를 비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짝짓기의 본질’에 대해서도 한번 살펴보자. 인간의 짝짓기를 공작새처럼 암컷은 수동적으로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기위한 노력으로 보는 견해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으로 보면 수컷이 후세를 키울 양육의 고통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실고기, 해마등과 같이 새끼 양육에 암수의 위치가 변하면 태도도 서로 변한다. 결국 배우자를 찾기위한 성선택(sexual selection)에서 여성이 임신과 출산 양육의 고통때문에 더 소극적이란 의미다. 1972년 로버트 트리버스는 성선택이 주로 수컷들에게 강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암수가 자식에게 주는 부모투자(parental investment)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일처제 혹은 일부다처제의 문제에 대해서는 인류에게는 진화심리학적으로 외부적 일부일처제, 혹은 일부다처제가 본성이란다. 즉 장기적인 짝-결속(pair-bonding)을 이루면서 동시에 일시적인 외부와의 성관계도 벌이는 독특한 짝짓기 체계를 진화시켜왔다. 일부다처제의 가장 뛰어났던(?)선수는 17세기 모로코 폭군 물레이 이스마일(Moulay Ismael)이었고 그는 4명의 부인과 500명의 첩사이에 1,171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것은 외로움이 두려워 단순히 사귀는 수준이 아니라 재혼이라는 굴레(?)로 다시 묶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이성적 사랑의 감정은 일반적으로 고작 2여년뿐이고 유효기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가족끼리 왜 이래!’가 될 수도 있다는데, 한번 결혼식을 하면 다시 이혼 하는 것은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인데, 재혼커플이 더 잘 헤어진다는데, 서구유럽에서 결혼제도는 오히려 특별한 것이라는데, 히딩크가 여자친구와 다니듯 하면 되지않을까?

그렇지만 만일에 말이지, 서로 편안하고 갈수록 정이 드는 사이라면 왜 또 길지 않은 세월 나뉘어 지낼 필요는 뭐 있을까. 떳떳하게 주변에 공식 부부로 공표하고 서로 남은 세월 손잡고 가면 그 황혼은 더욱 노을지는 아름다움이 되는 것 아닐까.  노년의 행복, 아니 노부부의 행복, 좀 넓게 범위를 잡아서 노커플의 사랑, 그것은 분명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테레비에서  손잡고 걷는 노부부에게 젊은 피디가 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렇게 좋으세요?" " 젊은 양반 자네도 늙어보면 알걸세"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할머니를 길 안쪽에 세우고 걷는 할아버지의 모습일테지. 그 맞잡은 손과 느린 걸음에 비치는 햇살 일테지.  지하철에서 밀리는 인파에 할머니를 보호하려고 감싸안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감동했다는 어느 글은 이런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테지.

결론이라는 것을 자의적으로 내려보자. 사랑은 ‘허무’이면서도 ‘눈물’이다.  ‘꽃게무덤’에 나오는 사랑, ‘오델로’ 나타나는 소유적 사랑은 어쩌면 사랑의 이중성이자 한계이다. 그것은 존재론적 허무와  연결된다. 동시에 아내가 늙어가는 것, 그 주름이 안타까워 지는 것,  맞잡은 손에 비치는 늦은 햇살같은 사랑은 눈물이며 꽃이며 열매이리라.

새로 시작하는 중년의 사랑. 중년의 재혼, 그 앞길에 또 맞잡는 손길에 깊은 날의 햇살이 깃들기를 바래본다. 

20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