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지 않아도
- 역사가 보여주는 진실 -

 

 투기(妬忌), 시기를 합니다. 곧 그러다 말지요. 분노도 합니다. 그러다 한 밤 자면 또 잊지요.
 지난 시절에 대한 온갖 감정들이 때로는 봄 풀 오르듯, 혹은 산불처럼 번지기도 하지요. 그러다 또 어느 날에는 잊고 삽니다.
 분노와 슬픔과 좌절로 밤잠을 설치고, 밥알을 모래알 씹듯 하다가도 또 어느 해인가는 망각 뒤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지난날들이 훗날 돌아보면 다시 그리움이 됩니다. 올봄 다시 이 땅에는 봄꽃이 만개했습니다. 

 벚꽃잎이 바람에 지는 모습, 이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까요? 목련꽃의 화사함, 그 순백의 아름다움 앞에 서면 모든 번뇌 망상이 탈색되어버리듯 합니다.
 그러나 이런 풍경도 잠시라는 것을 압니다. 눈여겨 돌아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돌아보지 않아도 꽃은 피고 새는 웁니다. 봄은 느끼는 자의 것이다. 아마도요.
 보랏빛 제비꽃이 목련이 흘린 눈물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꽃 앞에 한참을 머물러 정열과 순수와 희망과 설렘을 나눌 시간 같습니다. 진달래로 들뜬 마음이 개나리로 황홀경에 빠지다가 목련 앞에 서면 바람처럼 탈색이 되기도 하는 이 찬란한 봄 말입니다.
 세상사는 언제나 우리를 바쁘게 돌아볼 여유도 없게 합니다. 실적도 과업도 감정도 휴식도…. 그러다 보면 봄은 또 하염없이 갑니다. 돌아보지 않는 사이…. 이 봄이 짧음을 알기에, 또 버텨야만 하는 긴 여름이 올 것을 알기에 우린 더욱 이 봄의 환희 앞에 서성대고 있습니다. 

 역사를 되돌아봅니다.
 조선의 왕 수명 47세, 1/4이 독살당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신하들이 갈아치우는 왕이 무슨 힘이 있었을까요. 연산군 몰아낸 중종반정(中宗反正), 그 나약한 왕비 문정왕후(文定王后, 윤형원 누이), 그녀는 대윤파 윤임(尹任)의 핏줄 인조를 자신의 아이처럼 양육해야 할 소임으로 왕비가 되었고, 그 역할에 목숨줄처럼 충실했고, 그러나 자신의 아이를 낳은 후 인조를 아마도 독살하고 친자 명종을 왕위에 앉히고 거의 20년을 수렴청정했다지요. 어제 이를 빗댄 영화 ‘후궁’에서 조여정이 실권을 잡아가는, 그 처절한 욕망의 현장을 묘사하고 있었는데요, 죽이지 않으면 죽는 현실, 음모, 중상, 모략, 암투 때문에 살해는 어쩔 수 없는 선택 같기도 합니다. 전장에서 적군을 사살해야 하는 것과 같이요. 

 아무리 봄이 아름다워도 우리가 봄만 즐길 수는 없는 것이 역사 같지요. 이런 권력자들의 암투가 조선의 멸망으로 연결되고 현재 분단의 조국으로 연결되어 우리 민족이 지금도 당하는 고통의 업이 되어 있지 않나 합니다.
 아니고 민족의 운명이라구요? 그건 운명이 아니지요. 지난날의 과오이며 뼈저린 후회이며 오늘을 사는 교훈이지요. 현재의 남북 대치 군사 위협과 경제와 부자유의 원인인 게지요. 

 왜 현재 우리는 민족 분단, 열강의 눈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을까요? 이게 모두 민족의 나약성 때문 같습니다. 왜 선한 백성, 착한 백성, 말 잘 듣는 백성, 참아내고 인내하는 백성으로 살았을까요? 왕실 주변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안위와 입지와 권력을 위하여 그렇게 암투했고 왕도 갈아치웠는데 그것을 백성들은 운명처럼 수용했으니. 영국, 프랑스, 독일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미국 또한 마찬가지예요. 결연히 의연히 일어서서 분개하며 대항하며 투쟁하고 드디어 시민이 역사의 주인이 되었거든요. 기득권에 대한 도전은 지금도 불온 세력이라 합니다.  

 어제도 선생들과 이런 얘기들을 나누었지요.
 “지금 애들은 사다리를 잃었다. 우리 때만 해도 사다리가 있었다. 이제는 자력으로 집을 사지는 못한다.”
 국가가 주식 투기,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합니다. 망한 것이 자기 책임이라고요?  

 왜 학교 재정만 살리려고 국가가 학생들에게 융자만 해줄까요? 7년 벌어도 1년 치 집값 상승분 못 따라가는 이 세상이 공정하다고 설마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혹은 무주택자의 설움, 서민의 애환이라고 체념하거나 아니면 종교에 귀의해서 내세나 기약하는 그런 도피는 아니겠지요? 분노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불온주의자가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게 나약성이고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가 얘기한 ‘낙타’지요. 물만 등에 채워주면 사막을 하염없이 걷는 낙타요. 인내, 포용, 화해, 수용, 안정… 모두 약자의 논리, 아니 강자의 지배 논리지요. 

 우리는 이 찬란한 봄에 다시 역사 앞에 섭니다. 지금 과거에 비해 얼마나 잘사는데 모두 박정희 덕분인데 무슨 소리냐고요? 강남 집값 평당 오천만 원이라고 떠들면 불온주의자라고요? 직장 문화 상명하복 그건 우리의 미풍양속이라고요? 사학 재산은 자율이고 국회의원은 정권을 잡는 것이 목적이라 뭐든 허용된다고요? 자치단체 의회가 자기 봉급 스스로 정하는 것 어쩔 수 없다고요? 기업 탈세 많이 개선됐다고요?  

 아직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시민 주권, 자유, 평등 아닐까요? 독립운동 다시 해야 할까요? 피지배자는 지배자로부터 지배 국가로부터.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주권을 회복하고 ‘스스로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