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봄 퇴근길에 매화분재를 하나 샀다.

지하철역 노상 작은 트럭에서 70대 목소리 큰 할배가 팔고 있었다. "안사면 네 손해"라는 할배, 작고 큰 화분들이 작은 차를 꽉 채우고 있었는데 유독 짙은 자주색의 작고 아담한 매화꽃이 눈에 들어 왔다.

가격 3만원.. 사 와서 발코니에 놓았더니 따스한 햇볕 받고 꽃을 피워대기 시작했다. 꽃이 피어나는 환희는 경험해 봐야 안다.

꽃잎이 열리는 그 깊은 환희, 그 내밀한 감춰진 진실? 그것이 피어나는 순간은 시간이 멈춰버린듯 하다. 백합이 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수려함이 하나씩 꽃잎으로 열릴 때

우주가 열리듯, 아이들의 새근새든 잠든 얼굴, 혹은 숫처네 시집 가던 날의 설렘같은, 발자국없는 설원, 미지의 세계, 순백의 세계가 그렇게 열리듯 한다.

매화는 그렇게 금년 봄을 한껏 피워냈다. 봄의 한 가운데 서서 지난 한겨울의 얼었던 기억과 한을 향기와 몸짓으로 풀어내고 녹여내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동안 잊고 지내다 어느날 ... 열어본 발코니.

꽃이 시들고 잎이 말랐다. 물이 부족 한게다.

매우 미안코 죄송코 불쌍코...무심한 주인만나 화려한 봄이 그렇게 시들어 버렸다. 급히 두세컵의 물을 주었다. 혹 죽진 않겠지 기대하며.

그리고 며칠후 작고 붉은 꽃 몽오리가 다시 맺고 녹색의 어린 잎이 다시 나기 시작한다.

생명이 다시 시작될 때 그 환희는, 그건 참으로 두배의 기쁨이다. 떠난 사랑 되돌아 오듯. 14후퇴 때 잃어버린 자식 찾듯, 집 나간 탕자가 되돌아 왔을 때 주인이 소, 돼지, 닭 다 잡아서 잔치 하듯.

여하튼. 회생의 환희는 잃은 슬픔을 두배로 되돌려준다.

그런데 우리가 산다는 게 꽃만 볼 수 없고 육십대의 기억력도 휴대폰을 가끔 냉장고에서 찾는 시기라 며칠만 되돌아보지 않으면 곧 꽃이 시든다.

꾀를 냈다. 큰 들통을 가져와서 퇴비와 흙을 가득 채우고 꽃나무을 옮겨 심었다. 사흘만 잊어도 시들던 꽃나무. 이젠 이전보다 열배는 더 커졌으니 최소 한달은 가겠지. 아니나 다를까 물을 듬뿍 주었더니 늘 푸르다.

퇴비까지 사서 분갈이를 해주고 물도 듬뿍주었으니. 아니 자랄 이유가 없다. 그렇게 웃자라던 녀석을 보다가 또 잊어 거렸다. 물 주는 것을.

여하튼

이리 더운날 까맣게 잊고 있었던 화분을 다시 봤다.

잎이 노랗게 마른지 이미 오래되었다. 또 물 주는 것을 잊었다. 잘 자라고 잘 살고 있겠지. 그렇게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까지 ...돌보지 않으면 잘 되는 것이 없다. 부부간 연인간 가족간에도 마찬가지리라.

이제 가망이 없어 보였다. 줄기까지 말라 비틀어 졌으니. 대단히, 매우, 엄청나게 미안하고 죄송하고, 그렇게 자책하는 맘으로 또 물을 줘 봤다.

살아나든 못하든 이제 네 인생? 아니 목(木)생이다. 생각하면서. 그러고 또 며칠 후 우연히 내다본 베란다. 또 새 잎을 밀어 올리고 있다. 그 생명력에 탄복할 지경이다. 그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 파란 잎이 두어개 나올 때의 그 감동과 푸른 환희, 생명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지금은 거의 회복 되었다. 한 열흘 남짓. 이전의 모습을 다시 찾아 간다. 시들고 비틀어진 가지 끝까지 수분을 밀어 올리고 그러면 즉시 나무는 잎을 피워낸다

올 봄 전입 신고한 발코니 매화꽃의 지난한 삶, 몇 번을 기사회생한 꽃나무, 영속되는 것은 없다. 지속되는 것은 없다. 돌보지 않으면 관여하지 않으면 모두 관계를 잃는다.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그것만이 원래 타고난 생명력을 유지시켜 갈 수 있겠다. 자연은 생명을 주었고 그것을 지켜가는 것은 인간의 몫인가 보다.

물 듬뿍 주었는데 왜 못사느냐고? 관심 안 준 것도 아닌데 왜 시드냐고? 주인도 바쁘고 할 일이 태산이라고, 그게 매화의 생명을 살리는 변명이 될까?

소유욕! 갖고 싶은 욕망으로 선택해서 싫증나면 버린다면 그것은 무릇 생명들까지도 나의 소유로 보는 참으로 주관적인 폭력일게다.

그렇다고 매화나무 한그루에 온통 시간을 저당 잡힐 수도 없는 일, 매화가 인간의 것이 아닌 것은 인간도 매화의 것이 아닌 것과 같을게다.

서로 구속하고 얽매이는 것은 자유가 아니지만 난초 한그루도 인연을 맺으면 끝없는 보살핌이 필요한 것, 때문에 선택은 신중해야 하고 그렇다고 선택자체에 자신을 종속시키는 것 또한 맞지도 않겠다.

관계는 부담스련 기쁨이어라. 매화에 잡힌 삶처럼 우스광스런 것도 없겠지만 그러나 내가 가꾼 꽃만이 꽃이기도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