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대를 위한 변명
-겨울 하루의 일기- 


대형 출판사 대표를 만났다. 최단기간에 출판사를 거의 선두그룹으로 이끈 분, 50대, 넘 겸손해서 놀랐다. 인사는 90도, 회사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두가지란다. 배려와 기획, 매주 기획회의하고 직원간의 배려가 회사 가치란다. 직원들 거의 사직 없단다. 

종이 커피 잔 직접 치우고, 문 앞까지 나와 깍듯이 인사하는 그 양반의 매력이 여하튼 깊이 남았다. 오십은 아직도 더 열심히 뛰어야 할 나이, 나이 상관없이 할 일과 희망이 있으면 그는 언제나 청춘,
 

오후~
첫눈이 내린 등산길을 오른다. 어둑해 지는 등산길에는 잎을 버린 나무들이 수선수선 서 있고, 겨울을 준비하는 산은 또 깊은 침묵에 빠졌다. 석양빛으로 물든 하늘에 엊그제 내린 잔설에 눈사람하나 초겨울 햇볕에 비켜 서있다. 그렇게 산에는 늘 침묵의 소리가 있고 조용한 분주가 서려있다.가장 친근한 게 산이다. 언제든 말없이 품어주니, 누구든 내치지 않으니, 사람을 가려 받지도 않고 뭐라고 소리내어 자기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봄이 오면 또 꽃과 잎을 낸다. 목련은 벌써 몽우리를 맺어 내년 봄을 기약하고 있다. 

 

첫 눈> 

바람도 없는 산 골 살포시 오룻이 /첫 눈이 내렸다 달빛처럼 내렸다 

불러도 대답없는 떠난 님의 길을 따라/아직도 깨지 않은 산 모퉁이 길을 따라
소리없이 하염없이 하얀눈이 내렸다 

 

육십?!.. 

손석희는 육십에 현역이다. 뉴스 끝에 그도 소품을 직접 들고 나간다. 사장이라지만 노룩패스하는 얘?들과는 좀 다르다.
 회사에서는 정년이라고 밀려나는 어정쩡한 나이, 아직도 청춘인데, 그러나 이제 사는 게 뭔지 조금 알만한? 나이, 포기할 줄도, 버릴 줄도, 그러나 또 그리워하거나 나누거나 서로 바라볼 줄도 아는 나이, 뭐든 품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그리고도 겸손 할 수만 있다면, 이젠 뭘 안다고 나대지도 않고 절망에 찌들지 않을 수 있다면, 지혜와 깊이와 혜안과 인내와 수용과 그리고도 외면하지 않는 아픔을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애틋함도 서러움도 아쉬움도 이제 조금씩 이해할 수만 있다면, 우상과 편견에 빠지지 않고, 경험과 감사로 느낌과 충만으로 즐거워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육십일 수만 있다면...
초겨울의 고요가 깊다. 이 지구에 아침이 오면 새들의 노래가 들리며, 빈 들 빈 가지에도 겨울이 오고있다. 나훈아라는 가수는 이런 노래를 했다. "백년도 못살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긴가민가하면서 조마조마하면서~, 설마설마하면서~" 그렇게 산다고, 그래서 "소주 한잔 마시고 사내처럼 잊었다"고. 그도 이제 60을 지나 70이다. 겨울 밤의 고요가 깊다. 지금 쯤 양평에는 부엉이 소리 비슷한게 들릴 때다. 고독이 깊어 시간이 스스로를 버거워 하는...

그런자 그러나 말이지...
늦은 밤~ 티비를 본다. 케이블에서 `쇼생크 탈출` 주연,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1995년 작."두려움은 너를 죄수로 가두고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희망을 갖는 것이 절망을 깨닫게 하는 기재가 될까, 아니면 희망만이 삶을 다시 이어 갈 용기의 이유가 될까? 

절망에 대처하는 법에 대해 영화는 의문을 던진다. 교도소의 높은 담장은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다음에는 익숙하다가 나중에는 의지하게 된다"는 것, 절망에 길들여지는 궤적이다. 해서 평생토록 감방에서 한 생을 보냈던 노인은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교도소장은 특정사회, 강제사회,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마저 허용되지 않는 유리된 공간에서 어떻게절대권력의 강자가 절망에 갇힌 인간을 파괴시켜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떻게 사회라는 체제, 조직, 혹은 강자의 권력은 약자를 무력화 시켜갈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었다.
비정상의 보편성, 악의 보편성은 역사 어디에도 늘 숨어 있다. 보호색으로 위장되어 있어 구분 할 수가 없다. 교도소의 담장에 익숙해지는 것은 길들여지는 것이고 체념하는 것이고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렇게 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육십이 되면 이런 것들이 어쩌면 수용 아니 수긍해야만 하는 세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이지 절대로 체념하거나 포기하거나 의식을 버리는 편리함에 자신을 내몰 일은 아닐께다. 수용과 포기는 다르겠다. 두려움이라는 담장에 갖혀 그것이 익숙해지는 혹은 담장을 의지해지는 나이면?    

우리가 사는 세상, 사회복지, 평등, 권리, 모두 옳다, 그러나 그러다가 경쟁력을 잃어버리면?  혹은 경쟁을 부정하거나 경쟁을 인간소외의 시스템으로 간주한다면, 지금 우리는 이런 프레임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 육십이 되어도 이것 또한 무심으로 변병할 수 는 없는 것, 

약자의 눈물, 사회적으로 눌린 자의 눈물을 닦는 것은 옳다. 그러나 눈물만을 닦아주는 얕은 위로는 인간 삶의 현실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서구 천년을 간 것은 이유가 있다. 플라톤은 하늘 꿈만 꾸었다. 다산은 이를 파악한 분이다. 사도 바울이 그랬다.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폭력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고, 로마병정을 위한기도? 그러나 역사를 보면 그런 민족과 국가는 사라지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비둘기도 뱀도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렇기도 하지만 이제 육십은 근거없는 희망은 서서히 손아귀를 빠져나감을 아는 나이, 더더욱 실패할 자유는 허용되지 않은 나이, 그렇다고 절망하기에는 이른 나이, 그래서 강하면서도 약해야 하는 이유를 조금 알만한 나이, 사회와 세상을 놓을 수도 없지만 그것에만 매달리지도  않는 나이... 보너스 하나는 그래고 잔설이 남은 산 길을 걸으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나이, 눈 내린 산빛이 이리도 고운 것을 이제야 조금 더 알아가는 나이, 그게 그나마 최소한의 50~60을 위한 변명이다, 아마도... 

김용희  2018. 12